21세기+20의 시작.

2020. 5. 31. 14:46Daily Moments

블로깅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나란 인간은 뭔가 끔찍하게 하기 싫은 일이 생길때에만 나에게 블로그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점이다.

즐거운 기억과 긴장되고, 뿌듯하고, 자랑하고 싶었던 일이랄지,

또는 공유하고 싶은 좋은 여행지랄지 뭐 이런게 있을때 이 블로그가 떠오르는게 아니라,

뭔가 지금 하는 일에서 철저히 도망가고 싶을때 - 글을 쓰면서 내 자신을 알아간다. 진짜 소름 끼치게 정확하다. -

갑자기 블로깅이 하고 싶어진다.

 

그렇다. 나는 지금 뭔가에서 도망치고 싶다. 

 

마지막 글이 또 작년 1월이라니, 정말 세월가는게 빠르구나를 또 한번 절절하게 느껴본다.

나는 이런저런 방황을 하고, 작년 5월엔 붕붕이를 구입했다. 이것은 정말 나로선 꽤 큰 사건이었지만 블로깅을 해볼까 이런 생각조차 안한듯. 난 전형적인 쫄보로 운전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 구한 직장이 늦게 끝나서 교통편이 없는 관계로 구입을 했어야만 했다. 붕붕이에 대한 여러가지 충격과 공포의 에피소드들이 있지만... 일단 나중으로 미뤄두고... 여튼 지금은 아주 만족하고 있다. 심지어 나의 붕붕이로 - 참고로 아주 쪼꼬미 피아트500 - 멜번 시드니를 편도로 삼세번 이동했다... 언빌리버블!

 

작년 9월엔 한국도 한번 다녀왔는데, 우리와 15년을 함께했던 누리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우리 가족에게 있어 정말 너무나 슬픈 일이었고, 그 슬픔을 나눠야 했다. 지금도 마음이 저린다. 그 꿀단지같은, 우리 엄마가 늘 누리 눈을 보고 했던 말 중의 하난데, 그 눈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마지막 일년을 엄청 고생하고 가서 마음이 더 아팠다. 병원에 입원해서 고생할때 엄마랑 함께 병원에 있던 일도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 꿀단지같이 반짝이던 눈에서 생기가 사라진걸 느끼던 그날도 떠오른다.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작년 9월말, 멜번에서 시드니로 직장을 옮겼다. 이건 아직도 내가 똥을 밟았구나하고, 후회를 하고 있는 일 중의 하나이지만, 나란 인간은 분명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했을거다. 그러기에 뭐... 음. 어쩔수 없지... 누굴 탓하리오.

열심히 일하고, 시드니에서 맹자 엄마도 아니고 혼자 좋은 환경을 찾겠다며 3개월동안 이사를 삼세번 - 내가 이 숫자를 선호하는 걸까 - 하고서 드디어 안정을 되찾았건만,

모두에게 큰 재앙을 가져다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3월말부터 일이 없게 되었고, 나는 고심끝에 멜번으로 다시 내려갔다. 음. 고심이라고 하기엔 좀 성급하게 3일만의 결정이었네. 음. 나 숫자 3 참 좋아하네.

성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호주 각 주정부에서 보더를 서로 막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는데, 그 당시 WA, QLD, 그리고 수도가 있는 ACT에서 보더를 막았기에, 혹시나 내가 있는 NSW와 VIC 이동이 불가능해질 경우, 시드니에서 렌트비만 내고 멍때리고 있을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친한 언니가 드디어 새집으로 이사할 날을 받아서 뭔가 이건 운명일까, 가서 은혜를 갚자 뭐 이런저런 생각도 들었고.

 

 

니들땜에...

 

하지만 붕붕이로 10시간 거리를 또 운전해서 내려가자니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넘 떨려서 아주 괴로웠으나, 그때 당시 뉴스에서 굉장히 뭔가 다급하게 나를 만들었기때문에, 나는 나름 정들었던 한달 산 시드니 집을 떠나게 되었다. 온갖 짐을 또 다 싣고... 올라올때도 혼자 급하게 짐을 싣고 야반도주하듯 했어서, 그때 분명히 내가 다시 멜번으로 간다면 절대 혼자는 아니 갈테야,라고 으름장을 놨었지만... 이 시국에 여행을 할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눈물을 흘리며 고독을 또 맛보았다. 뭐 막상 가니 또 여행하는 기분도 들고, 노래도 맘껏 부르고, 왠지 모를 해방감도 느끼고, 고향으로 가는 기분. 그리고 별탈없이 안전하게 도착한 내 자신을 격하게 칭찬. 친한 언니가 내가 불쌍했던지 멜번 도착하기 3시간 전에 있는 동네로 마중을 나와줘서 함께 전화로 무전을 치며 야간 운전을 했는데, 이것 또한 즐거운 추억. 친한언니도 피아트 500. 내가 따라 샀다. ;)

 

떠날줄 모르고 했던 세차

 

그런데 정말 어이없게도 그 다음주부터 시프트를 일주일에 하루씩 받을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좀 짜증이 치밀어 올랐으나, 어차피 렌트값 내기 턱없이 부족하니, 그냥 에라 모르겠다 외면을 하게된다. 비자 만료기간은 점점 틱톡틱톡. 

 

그리고 일주일뒤 언니의 뉴 하우스로 이사를 하는데, 오모 완전한 새집! 비록 시티에서 한시간 넘는 거리에 떨어져 있지만, 뒷마당도 있고, 주차장도 있고, 방도 3개에 모든게 반짝반짝 새로운! 원래 살던 집이 4층 높이라 짐을 나르다가 정말 지옥을 맛보긴 했지만, 그래도 도움을 줄수 있어서 뿌듯했다. 이쯤 락다운까지는 아니었지만, 장보기랑 운동 및 필수적인 일들을 빼곤 집밖에 나오지 말라는 규제가 생겨서, 역시나 에라 모르겠다, 노랑색 NSW 번호판을 가진 내 차로 이동했다간 벌금 폭탄을 맞겠지 하고 몸을 사리며, 한참 집 꾸미기에 열중하고, 밥을 해먹으며 3주간을 보냈다. 내 인생에서 버닝스를 가장 많이 가본것 같다. 삽, 쟁기, 각종 화분, 흙, 돌 등등등... 

 

즐거운 가드닝


그리고 이제 비자도 3개월 남짓밖에 남지 않았기에 급 불안감이 엄습하고, 일을 조금씩 재개할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소문을 듣고, 뭐라도 일단 계획했던건 해야겠지 하는 결단이 생겨 다시 시드니로 올라왔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다시 열시간 운전이라니요... 내 붕붕인 너무 쪼꼬미에 귀엽기만 하고 엔진도 작고, 진짜 첨엔 우습게 봤는데, 아주 대단한 차다. 그게 4월 말. 

 

그 와중에 예쁜 시드니

 

다만 야심차게 올라왔건만 꼴랑 이틀 일하고 계속 띵까띵까 놀고 있는데, 너무나 감사하게 전에 살던 집에서 환영해 주셔서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는 점. 약간의 규제가 풀려서 붕붕이와 하이킹도 슬쩍 다니고, 산책도 하면서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긴 했지만, 뭔가 계속 붕떠있는 느낌.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뭐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들다가 또 아 어쩔수 없다 뭐 이런... 사실 비자 만료일만 아니었으면 어쩜 이 시간을 즐겼을수도 있겠지만, 모든게 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는 찜찜한 기분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지금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 것 중의 하나를 위해 경력 시간을 채워야 하는게 있는데, 아주 애매하게 못 채우게 될것만 같아서 화딱지가 난다. 원래대로라면 4주면 충분히 다 채울수 있는 시간인데, 일이 없으니... 원...

 

지금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이렇게 블로깅을 하게 만드는 그 존재는, 다름 아닌 영어 시험이다. 계속 미루고 미루고 한없이 미루기만 했던... 심지어 두달전에 보려고 계획했으나 코로나까지 합세해 미루게 해준, 바로 그 영어 시험. 하하. 발등에 불이 떨어져 일단 빨리 보자싶어서 꼴랑 2주 준비하고, 보게 생겼다. 그리하여 대망의 시험날은 3일 뒤. 

 

전에 준비했던 아이엘츠도 아니고 PTE라는 시험을 볼 계획인데, 이게 나를 패닉으로 몰아놓고 있다. 준비하지 않은 자의 최후랄까. 일단 이 시험을 보고난 뒤에 기술심사라는 것도 봐야하는데, 이게 또 화상통화로 진행될 예정이라 나에게 끔직하게 고통스러운 긴장감을 안겨주고 있다. 선례가 없어서 뭘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여튼... 일단 이 두가지를 끝낸 다음에 내가 뭘 할수 있을지 방향을 잡을수 있어서. 빨리 다 끝나버렸으면 하고 바라고 있는 중. 모든건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주의지만 잊지말아야 할 현실은, 영어시험은 $375, 기술심사는 $2000이라는 점. 수입이 없는 이 시국에 말이다.

 

나중에 내가 하하호호 웃으며 이 시간을 추억할수 있을까.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고, 노력은 대충하고 요행만 바라는 한탕주의자는 블로깅을 해본다.

또 언제 내가 블로깅을 하려나?

 

코로나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믿고싶지 않은 21세기+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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