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8

2016. 9. 6. 00:25Daily Mo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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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번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여러번 먹었지만, 가족들과 가을이를 떠나는 게 힘들어서 꽤 여러번 고민을 하고, 또 미루고... 그러는 사이에 나는 어느덧 한국의 생활에 온전히 뿌리를 못 내리고 갈팡질팡 흔들리고 있었다. 호주에서 돌아와 입사한 회사에선 야근과 주말 출근이 1년 넘게 이어졌고, 당시 지방에 계시던 부모님댁에서 가을이를 데려올수 있는 상황이 안 되었다. 이런저런 계기로 독립한지 12년만에 가족들이랑 다시 함께 살게 되었고,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과 경험들과 비례하여 더욱 끈끈하고 애틋해진듯 했다. 무엇보다 내가 부모님께 맡기고 떠난--버려졌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정말 좋겠다--가을이와 다시 함께 살게되어 너무나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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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회사의 밤샘작업, 그로인한 불평 불만은 늘어만 갔고, 매달 불안정하게 받는 월급도 나를 이리저리 흔들리게 했다. 결국 이직에 대한 진지한 생각없이--이상하게도 어느덧 내 유토피아가 되어버린 호주로 도망갈 생각을 끊임없이 했고, 30대 중반이 되니 지금이라도 나가지 않으면 영주권이고 뭐고 안된다는 생각들이 이어졌다--회사를 탈출해야만 하는 여러가지 핑계들을 앞세우고 나는 2년 6개월만에 회사에서 뛰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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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 또한 편안함과 안정감이 점점 답답함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이건 전적으로 내 탓이지만, 가을이와 함께 나가서 살기엔 내가 이 아이를 너무 불행하게 만들거란 사실이 너무나 자명했으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툴툴대는 못난 딸이 되어가고 있었다. 부모님이 키우던 누리와 내가 데려온 가을이는 날씨 및 계절과 관계없이 평균적으로 하루에 3회 산책을 하고 온갖 예쁨을 받고 있었는데, 내가 독립을 하면 아마 가을이는 하루에 1회 산책도 불확실할 터였다. 혼자 컴컴한 집에서 온종일 누가 오기만을 기다릴텐데, 이미 내가 혼자 살때 가을이를 5년간 키우며 저지른 만행이기에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새 가을이도 부모님 그리고 누리와 함께 지낸게 7년이 되었으니 어쩜 나보다 부모님을 신뢰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속마음을 들을수 없으니 이 또한 나 편한대로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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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에 떠났을 때는 가을이도 아직 6살 밖에 안 되고 씩씩한 강아지였기에, 그리고 내가 곧 돌아온다는 전제조건이 있었기에, 너무 보고싶었지만 크게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다. 이제 가을이도 12살이 되었고, 올해 초엔 수술도 했다. 건강에 하나둘 이상이 생기고 있고--유선종양과 뒷다리 떨리는 증상, 하지만 늘 씩씩하다-- 내가 몇년간 떠났던 기간동안 그 작은 머리에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았는지 내가 외출하는 날이면 현관을 떠나질 않는다는 부모님의 걱정어린 이야기들을 종종 들으면 마음이 아프다. 요새 사람은 100세, 개들은 20세 시대라지만, 우리 가족의 첫 강아지 꼬모가 14년을 함께하고 떠났기에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과 죄책감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릴수가 없었다.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였고, 여전히 그러하다. 인생에 있어 가장 후회할 일들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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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기적인 마음으로,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을 떠나 남의 나라에 가기로 결정을 내린 내가 나도 신기하다. 왜 지금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건지도, 무엇이, 왜 자꾸만 나를 흔드는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런지, 나란 인간이 어떤 미래를 살려고 이러는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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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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