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2021. 3. 29. 17:13Daily Moments


16년 4개월차가 되어가는 어화둥둥 내 가을이는 불과 나흘전만해도 잘 먹고 잘 놀고 좀 까칠하지만 아주 건강해 보였다.
하루는 낮에 산책을 다녀와서 집에 돌아오니 안절부절하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고통을 호소했는데 눈빛도 이상하고 처음 보는 모습이라 너무 놀랐지만 당장 병원에 데려갈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지켜보았다. 30분 정도 통증이 오락가락 하더니 지쳐서 잠이 들었고, 두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더니 아무 일도 없는듯이 쾌활하게 밥도 먹고 나가자고 조르고... 찜찜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일단 안심이 되었다.

심지어 계속되었던 오른쪽 어깨 통증을 좀 덜어주고자 동네 병원을 찾아 진통소염제 처방을 받은게 바로 전날이었다. 이 동네병원에선 1월에 정기검진을 했고 노화로 인한 문제들이 있을뿐 아주 건강하다고 해서 굉장히 안심을 하며, 그래 가을이가 좀 나이에 비해 건강하지 하면서 우쭐해댔지.... 하아... 나란 인간은 좀 어리숙해서 병원이 다 거기서 거기지, 내가 모르는 분야는 전문가를 믿어야지 뭐 그런 정신상태로 쭈욱 살아왔다. 물론 누리가 병원의 무리한 결정으로 급격하게 몸이 안 좋아져서 결국 1년뒤에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그때에도 나는 병원을 원망하긴 했지만 다른 병원에 갔어도 그랬으리라, 그 지경이 되도록 알아채지 못한 내 탓이지, 이런 생각을 계속 해왔다. 어쩌면 수소문 끝에 결정한 그 병원을 내가 선택했기에 나를 원망하는 마음이 그냥 더 커서 그랬던걸까...

그 전날 받은 약때문에 그런가 싶어서 더이상 먹이지 않고 가을이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 어깨통증은 나이가 많아서 퇴행성 관절염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는거라고 어떻게 할수 있는게 없다는 처방을 내렸던 또다른 병원 의사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던 내가 어리석었다. 이게 지난 11월이었으니 가을이는 4개월 전부터 S.O.S. 사인을 보냈던거였는데 바보같은 내가 눈치채지 못했던 거였다... 언니가 미안.

다음날 아침에 또 쾌활하게 밥도 잘먹고 똥도 싸고 기분좋게 산책하고 오후엔 낮잠자고 간식도 먹고 컨디션이 좋아보여 안심했다. 그런데 갑자기 저녁을 먹고 8시쯤 같은 고통을 느끼는지 똑같은 증상을 보였다. 이번에도 괜찮아지길 바래며 안아주고 달래주고 했지만 너무 힘들어보여서 바로 병원으로 갔지만 차트상으론 건강에 이상이 없어서 일단 통증을 완화시켜줄 마약성 진통주사와 약만 처방받아 돌아왔다. 그때 분명 내가 의사에게 디스크로 인해 이런 증상을 보이냐고 물었지만, 이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철썩같이 믿었지.
병원에서 돌아왔지만 여전히 같은 강도로 통증을 호소했고, 진통주사때문인지 눈은 감기는데 몸은 꼿꼿이 서있는 기이한 상태로 아파했다. 어찌나 가엾던지... ㅜㅜ
여전히 어리석은 나는 약도 먹여가며 호전되길 바랬지만 통증은 계속 되어 새벽에도 두어번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다음날 다시 병원에 대려갔다. 그 전날은 응급으로 간거라 다른 의사가 있었고 이날은 가을이를 계속 봐주던 의사였는데, 방사선과 초음파촬영을 했지만 여전히 오리무중... 요도에 결석처럼 보이는게 하나 있는데 조형촬영을 하지 않는 이상 확실하지 않고, 그게 결석으로 판명나도 당장 수술을 힘들다며 다음날 다시 방사선촬영을 해보자며 진통패치를 붙여주고 다시 차도를 보자고 함... 가엾은 내 강아지는 그냥 계속 똑같이 아파했다.

사실 부모님이 계속 며칠전부터 서울에서 다니던 병원에 가봐라, 거기 선생님이 경험도 많고 잘 보신다, 말 좀 들어라.. 나를 설득했지만 나는 아픈애를 데리고 가는것도 싫었고 똑같은 차트 결과를 보고 비슷한 얘길 할텐데 하며 들은채 만채 했다. 하지만 계속 아파하는 가을이를 보니 도저히 안되겠어서 결국 서울로.

기존 병원의 방사선과 초음파를 넘겨받았지만, 판독이 불가해 다시 찍었고, 너무나 놀랍게도 통증이 원인이 될수있는 가짓수가 줄줄이 나열되었다.
• 방광 종양 - 다음날 초음파 재촬영후 이건 아닌걸로 판명... 휴
• 요도 결석 - 다음날 이것도 일단은 아닌걸로 판명, 다시 찍으니 사라졌다.
• 담낭 찌꺼기와 담낭벽 석회화 - 노화로 인한거라 어쩔순 없지만 약물로 어느정도 치료 가능
• 신장 결석 - 노화, 심하진 않음
3~5번 경추 디스크(굉장히 심함) 척추 디스크

일단 기억나는건 이 정도.
탈수도 심하고 장에 똥이 꽉 차있어서 요도에 있는걸 제대로 볼수가 없었고, 하루 입원해 수액과 영양제를 맞히고 다음날 초음파 재촬영하기로 했다.

제일 크게 의심되는 원인은 경추디스크로 판명이 났고, 담낭도 일단은 약을 먹이면서 차도를 보기로 했다. 원래는 MRI를 찍어야 정확하게 볼수 있긴한데, 마취 최소 50분+약 120만원이라는 얘길 들으니 그냥 치료를 받아보자는 결론.
병원에서 줄기세포치료를 권해줘서 좀 부담이 되지만- 한방에 20만원이라고- 효과가 좋다는 선생님의 확신과 치료 사례들을 보니 일단 제발 안 아프기만을 바라며 다음주에 예약을 잡았다.

밤새 힘들어하다가 아침에 겨우 잠들었는지 늦잠을 11시까지 자는 가을. 오줌 누키러 델고 나갔는데 잔디에 계속 주저앉아있다. 불쌍한것... 몇번 자리를 옮겨주니 그제서야 싸고, 좀 걷기 시작했지만 힘들어하는것 같아서 델고 들어와 황태를 끓여서 먹였다. 반쯤 먹였는데 너무 아파해서 약을 먹이고... 한시간동안 서서 힘들어하다가 좀아까 겨우 잠들었다.

다음주에 병원가기 전까지 약으로 버텨야 하는데, 부디 좀 덜 아파하면 좋겠다. 강아지는 아픈걸 숨기는 본능탓에 아파하는 모습을 보기 힘든데, 병원을 몇번이나 데리고 갔는데도 애가 아파하니 참 속이 상하네.. 빨리 나아줘, 내 사랑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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